작년 말 중소기업을 퇴직하고 7급 일반행정 국가직 공무원을 준비 중인 강씨는 올해 초부터 강의실에서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책과 씨름한다.

50여 개 2인용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20평 남짓한 강의실에서다. 저녁 6시 30분부터 세 시간 동안 월ㆍ화에는 경제학, 수ㆍ목에는 헌법 강좌를 듣는다.

강씨가 공부를 잠시 쉰 건 남아공월드컵 한국 경기가 있었던 날뿐이다. 하루 8시간짜리 3개월 종합반 강의도 이미 끝냈다.

그는 2일 기자와 만나 "젊은 시절 꿈이 공무원이었다"며 "20일도 안 남았는데 필기시험에서 꼭 합격하겠다"며 책에 얼굴을 파묻었다.

인생 2막을 설계하는 40~50대들이 공무원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행정ㆍ외무고시를 비롯해 7ㆍ9급 공무원 공채시험에 적용됐던 응시연령 상한제가 지난해부터 폐지되면서 공시족(公試族)에 합류하는 중장년층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공무원은 안정된 자리라는 인식에 '신의 직장'으로 상징화됐기 때문이다.

온ㆍ오프라인 학원은 '늦깎이 공시족'으로 북적인다. 응시생 구성을 봐도 40~50대 지원자들의 증가 속도도 가파르다.

9급 일반행정직을 목표로 정한 주부 양 모씨(43)의 부엌 냉장고에는 요리법 대신 '국가배상법' 등 행정법 용어가 적힌 색색의 메모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잘 나가는 중소기업 해외영업부에서 10년 넘게 경력을 쌓았지만 출산 후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 양씨는 "'연령상한제 폐지'소식을 듣는 순간 목표를 세웠다"며 "국민을 위해 순수하게 일하고 싶다"고 눈을 반짝였다. 

특히 온라인 강의에 중장년 공무원 준비생들이 많이 몰린다. 이는 "40~50대는 젊은 수험생들과 공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온라인 강의에 관심이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한 공무원 시험 준비 온라인 사이트 회원은 연령상한제 폐지 전인 2008년까지 40대 이상 회원수가 줄곧 2000명대였으나 2009년엔 4329명으로 두 배 증가했고 6월 현재 5120명이 가입한 것으로 집계됐다.

공무원 시험 응시자도 늘었다. 행정안전부 채용관리과에 따르면 올해 국가직 7급 공무원의 경우 1782명으로 전체 중 3.4%를 차지했다.

이는 작년(1463명)보다 약 22% 증가한 것이다. 국가 고등고시(행정고시ㆍ외무고시)도 지원자가 작년엔 126명, 올해 151명이었고 9급은 작년 2499명, 올해 2924명이었다.

중장년 공무원 준비생들의 공부열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나자마자 공무원 시험 준비에 돌입하는 고등학교 졸업 예비생을 비롯해 20대 취업 준비생 등 젊은 준비생도 긴장하게 만든다. 7급 검찰사무 직렬 준비생 최강인 씨(28)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둘까 고민하는데 수업에 집중하는 50대 수강생을 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도전까지는 좋은데 합격생은 얼마나 될까. 행안부에 따르면 현재 40세 이상 합격생은 7급 13명, 9급은 19명이 일하고 있다. 현장에 배치된 지 1년도 채 안 됐지만 지난 사회 경험과 전문성을 살리고, 아들뻘 되는 동기생과 일하며 때로는 인생의 '큰형님'으로 자신들만의 강점을 살려가며 한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개인 사업을 하다가 작년 공무원 시험을 치른 인천공항 관세사 김명회 씨(47ㆍ7급)는 "퇴직하려면 13년이나 남았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궁무진하다"며 "기업을 운영하면서 쌓았던 경험과 노하우를 공직 업무에 접목시켜 일에 성과를 거둘 때 뿌듯하다"고 했다.

우정사업본부에서 일하는 이 모씨(52ㆍ9급)는 "아들뻘 되는 사람들과 동기생으로 같이 일하면서 아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고, 대화도 늘었다"며 "외부 사회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공무원으로 제2인생을 시작하면 공직사회에 새 바람을 불어넣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행안부 관계자는 "사회생활 경험이 많아 인간관계가 좋고, 때로는 동료로, 인생 멘토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한다. 업무 전문성이 있는 경우도 많아 조화롭게 잘 살리면 공무원 조직문화 업무에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