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차심부름 등에 머물던 단순 업무 보조에서 벗어나 이제는 최고경영자(CEO)의 일정 관리는 물론 인사·마케팅 등 주요 의사 결정에도 관여하는 등 ‘당당한 보좌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바빠진 CEO들의 여비서에 대한 업무 의존도가 높아지고 이들의 업무 역량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대기업 CEO 등의 여비서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경력직 여비서 선호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헤드헌팅사에는 최근 1∼2년 사이 대기업을 중심으로 경력직 여비서 채용 의뢰가 부쩍 늘고 있다.

‘탑경경 컨설팅’의 이소영 차장은 “2∼3년전 만해도 1년에 5건 정도 경력직 여비서 구인 의뢰가 들어왔으나 요즘엔 1년에 20건 이상으로 늘었다”며 “대기업 의사 결정이 갈수록 스피드하게 진행돼 신참내기 여비서로 대처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삼성그룹·LG그룹 등은 신입직원보다는 비교적 직장 경험이 있는 사람을 비서직에 배치하는 등 여비서 연령도 20대에서 30∼40대로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결혼과 동시에 퇴사하던 관행이 사라지고 CEO들이 승진하면서 호흡이 맞았던 여비서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사장단급 여비서 중에는 30대가 많고 윤종용 부회장 등 회장단급에는 40대 여비서도 상당수”라고 전했다. 대성그룹 김영대 회장의 여비서인 전성희 이사는 올해 63세로 우리나라 최고령 여비서다.

여비서들의 업무도 전문화되고 있다. 특히 외국계 회사나 중견기업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외국계 기업의 경우 한국 영업 법인 형태여서 규모가 작다보니 여비서가 마케팅이나 노사관계(HR) 등의 업무에 관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여비서들이 이런 경험을 살려 인사 담당자로 옮겨가는 사례도 종종 있다. 외국자동차 A사에선 최근 미혼의 여비서가 인사 담당 차장으로 옮겨가기도 했다.국내의 한 중견건설사에서도 여비서 출신이 인사팀 관리자로 이동했다.

하지만 실력있는 중견 여비서에 대한 수요는 높아지는데 비해,아직 기업이 요구하는 깐깐한 요건을 충족하는 여비서의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소영 차장은 “4년제 대졸 학력 이상에 능숙한 영어 구사 능력 등은 기본이지만 아직 국내 4년제 대학 중 비서학과가 있는 곳은 딱 1곳 뿐”이라며 “사정이 이러다보니 스카우트돼가는 여비서들의 몸값도 치솟는다”고 말했다. 올들어 모 정유사 사장 여비서로 옮겨간 경력 7년차는 연봉이 7000만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 변화에 맞춰 여비서들의 업무 업그레이드 욕구도 강해지고 있다. 세계비서협회가 주관하는 국제비서자격시험(CPS)이 국내에서는 2004년부터 실시됐는데,현재 6명의 합격자가 나왔다.